매일 돌보는 반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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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안 일어날텨? 학교 가야지, 지각허겄다!”
엄니의 고함소리에 잠을 깨면 바로 옆의 부엌에서 된장국 냄새와 장아찌 향기가 났다. 엄니의 몇 개 안되는 짐 상자 속에는 엄니의 유일한 보물인 장아찌 항아리가 당연한 일처럼 들어 있었고, 이 집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매일 뒤적여주고 그날 그날의 야채를 넣었다. 

일본 소설 ‘도쿄타워’를 아시나요? 소설의 주인공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소소하고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다 60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도쿄 시민이 된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집밥을 대접하는데요, 특히 주인공이 어머니의 장아찌를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그 맛이 정말 궁금해집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이사를 다닐 때에도 그 항아리만은 늘 가지고 다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누카도코’입니다. 

서서히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던 12월의 첫 주말, 큔에서 ‘나의 누카도코 만들기’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서로 1미터 이상씩 거리두기가 가능한 인원만 모여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쌀겨와 소금물, 채소, 그리고 인간의 손이 만나 일어나는 발효의 신비를 보여주는 누카도코는 우리나라의 된장 같은 것입니다. 계절에 따라 누카도코에 오이나 무, 양배추, 당근, 가지 등 제철 야채를 재워두면 누카도코 속 미생물이 채소를 발효시켜 누카즈케라는 절임 반찬이 완성되는데, 우리 몸에 유익한 영양소로 가득해서 반찬으로도 먹고, 밥에 섞어 먹고, 국도 끓여 먹는다고 해요.

각자 가져온 용기에 쌀겨와 소금, 물을 넣고 적당한 묽기를 살피며 잘 섞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준비해 온 자투리 채소들을 누카도코 안에 넣고 꼼꼼히 잘 덮어줍니다. 누카도코를 키울 때 넣는 이 자투리 채소는 2-3일에 한 번씩 새로 바꿔주어야 하므로 너무 잘게 자른 것보다는 적당한 덩어리가 좋고, 되도록 다양한 채소를 넣어주면 균도 다양해진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칠맛과 풍미를 더해줄 말린 다시마와 고추를 얹어서 뚜껑을 덮어주면 누카도코를 키울 준비가 끝납니다. 이렇게 만든 누카도코를 2주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뒤집어주고 채소를 바꿔주면서 다양한 균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로 키워줍니다.

 

 

주변에 온통 쌀겨가루를 휘날리며 누카도코를 만들고 난 후, 수향 대표님께서는 누카즈케 만들기와 누카즈케를 활용한 레시피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매일 누카도코를 손으로 휘저어주면 손에 있는 균이 미생물의 증식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채소와 누카도코가 서로 잘 만나 숙성과 발효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다른 맛의 누카도코가 만들어지고, 일본에서는 몇 대를 걸쳐 자기 집안의 맛으로 이어지니, 반려된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소설 도쿄타워의 어머니가 매일 장아찌 항아리 안을 뒤적이고 소중하게 간직하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누카도코를 키우면서 다양한 균과 친해지고 균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나눴습니다. 인간이 편안한 온도에서 균도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하는데, 나의 행동들이 균의 활동을 활발하게도 하고 더 새로운 맛을 내게 하기도 한다니 신기했습니다.

 

수향 대표님은 나의 누카도코를 키우고 나의 누카즈케를 만들어,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 내가 키운 균으로 자신의 건강과 면역력을 지키는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워크숍을 기획하셨다고 합니다. 미생물을 돌보고 키워가는 생활을 시작할 상황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보니, 나와 미생물에게 책임감을 가지는 생활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인지, 참여하신 분들께서도 누카도코의 관리나 누카즈케 재료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들을 하시며 열심히 메모하셨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수향 대표님께서 준비해 주신 다양한 누카즈케 요리를 맛보았는데요,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는 누카즈케와 누카즈케를 활용한 밥, 샐러드, 국까지 정성 가득한 음식들에 감탄했습니다. 누카도코에 얼마나 넣어두는지에 따라 염도가 달라지는데, 그런 차이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 누카즈케의 짠 정도를 다르게하여 준비해주셨습니다. 짭짤하고 시큼하면서도 오묘한 맛의 누카즈케 요리를 먹으면서 오늘 들었던 누카도코 이야기를 떠올리니,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균들이 내 몸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카도코의 ‘누카’는 쌀겨, ‘도코’는 이부자리를 뜻한다고 하는데요, ’쌀겨 이부자리’라니 정말 사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워크숍에 참여하신 분들 모두 저마다 좋아하는 채소를 누카도코에 넣고 매일매일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으로,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포근한 연말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INFO
프로그램
나의 누카도코 만들기
강연자
김수향
홈페이지
www.instagram.com/grocery_cafe_qyun
COLOPHON
서울소셜스탠다드 김예나
사진
서울소셜스탠다드 김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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