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는 공장만 많은 것이 아니다. 순간 본인도 모르게 맨션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미 맨션 애호가. 몇 개의 블록을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이곳엔 분명 맨션도 많다. 법적으로는 4층 이하, 연면적 660㎡ 를 초과한 공동주택을 ‘연립주택’ 이라고 부르고 맨션도 이를 지칭하는 하나의 이름이지만 그 이름에는 그 이상의 분위기와 추억이 깃들여 있다. 맨션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뚜렷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히 외래어가 주는 고급스러운 발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빌라, 맨션, 연립 그리고 각종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 차이를 밝히는 것은 여러 브랜드의 미네랄 워터들을 앞에 두고 특정한 맛을 고르는 것과 같은 짓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다란 아파트가 아닌 낮고 친근한, 아련하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빙빙 맴돈다면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주는 곳을 모두 ‘맨션’ 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여기 성수동에서 그런 이미지가 살아 있는 맨션 6곳을 선정하였다. 단순히 추억팔이라고 오해하진 마시길. 이 곳에서 현재와는 다른 멋진 가치들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성수동 산책하기
성수동의 오래되었지만 매력적인 '맨-숀'
TIPS
1. “넓은 계단이 펼쳐지는 곳”성동상가아파트, 1978홍콩 느와르물에나 나올 법한 포스를 풍기는 이곳은 뚝도시장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총소리가 들릴 법한 어두운 입구를 지나면 그러한 느낌이 단숨에 사라지는 공간을 목도하게 되는데 바로 넓디 넓은 계단이다. 여느 연립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2m에 가까운 폭은 마구 뛰어내리고 지그재그로 걸어다니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만큼 넉넉하다. 앞만 보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요즘의 계단과는 너무 다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공간 속에 떨어지는 햇살과 북유럽 풍의 블루톤은 이 공간을 한층 산뜻하게 만든다.
2. “아담하고 정리된 생활 공간”동신맨숀, 1981음식점들이 밀집된 상업거리(성덕정17길)를 걷다보면 연속성이 끊기며 경비원 없는 경비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너머에 동글동글한 글씨의 동신맨숀 표지가 손짓한다. 한 끗 차이인데 거리와는 다르게 조용한 기운이 감돈다. 건물은 대지의 형상에 맞추어 묘하게 배치 되고 계단실을 중심으로 한 완만한 경사지붕이 씌워져 있다. 다른 곳에 비해 크기가 크지 않아 아담하지만 건물의 외관이나 외부공간의 상태는 깨끗하고 잘 정리된 인상을 준다. 특히 각 집의 생활 공간인 계단이나 현관을 보면 잘 관리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바닥 상태나 나무난간, 우편함 등은 낡은 멋스러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3. “새겨진 숫자들”장미아파트, 1983서울숲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비교적 커다란 연립주택들이 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장미아파트이다. 굳이 따지자면 연립주택과 아파트의 사이의 자식 쯤 되는 이 곳은 5층의 건물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미아파트들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꽃의 이름을 딴 유행을 적극 반영한 듯 붉은 타일로 마감된 벽이 한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 멋진 문신을 보게 되는데 바로 바닥에 새겨진 금빛 숫자들이다. 층별로 일명 ‘도기다시’ 라고 부르는 인조석 물갈기의 방식으로 마감한 바닥에 황동 숫자를 넣었다. 벽에 붙었다가 떨어져 ‘층’ 이라는 글씨만 남은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바닥과 한 몸이 된 게 은근하지만 훨씬 시각적이다. 그리고 버텨온 시간이 질감에서 느껴진다. 때가 탔지만 반질반질한 윤이 나는 숫자에서 앞으로도 제 몫을 다할 것이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4. “골목안의 숨은 정원”신성연립, 1978서울숲 위의 밀집한 저층의 주택들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마치 한 때 유행한 샤기컷 스타일의 정원을 가진 연립주택이 있다. 사실 통상적인 정원이라고 칭하기 쑥스럽기도 하지만 각종 관목들과 풀들이 들쭉날쭉 자라난 묘한 조화는 분명 정원사의 흔적들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남은 땅을 모두 식물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다. 일부는 농장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아 이곳에는 농부(들)도 살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층으로 높지 않은 데다가 시원시원한 간격의 건물들 덕분에 바닥까지 햇볕이 닿게 해 준다. 그렇게 자유롭게 자란 식물들은 도리어 이곳의 사는 사람들의 일상 속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5. “모두의 아름드리 나무”공영연립, 1979옛날 마을 어귀에는 항상 이정표처럼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를 위한 그 나무에서 주민들은 휴식도 취하고 연인을 만나기도 했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재미있게도 그러한 장소의 흔적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에도 아직 남아 있다. 성수동의 중심도로 중 하나인 뚝섬로에 면한 경일초등학교의 뒷편에는 ㅁ자의 배치를 가진 공영연립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상당히 나이를 먹은 듯한 크기의 높다란 나무가 심어져 있다. 2-3층의 높이 밖에 안되는 연립주택을 한껏 덮을 정도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이 나무의 주위로 지금은 차들로 차 있지만 그 이전에는 평상이나 쉼터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무를 중심으로 입구가 향하고 거실이 향한다. 중정의 공간은 계절의 변화를 품고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의지가 되어 줄 것이다.
6. “발코니의 쓰임”부용연립, 1980언제부터 발코니는 우리 주거 공간에 등장하기 시작했을까. 그보다 발코니는 정말 도움이 되는 공간일까. 그 대답 중 하나는 합법화된 발코니 증축에 있을 것이다. 발코니의 적극적인 이용보다는 내부면적의 확대가 우선시되는 상황. 하지만 뚝섬역 근처의 부용연립의 한 주민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낮은 난간의 뒤로 창과 거실의 창이 보이고 그 앞으로 작은 발코니가 튀어 나와 있다. 얼핏 보면 방치되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 작은 공간에서 빨래를 널고 짐을 내어 놓는 곳으로 쓴다. 무엇보다 그 오랜 시간동안 발코니를 막지 않고 열어두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발코니 공간에 대한 만족감이 드러나는 듯하다. 4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변함없이 이 공간을 이렇게 사용했다면 분명 이 공간은 그 쓰임이 있고 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효용만으로 공간을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INFO
성동상가아파트
서울 성동구 성수2가1동 336-2
동신맨숀
서울 성동구 성수2가1동 331-232
장미아파트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56-421
신성연립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5-260
공영연립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56-243
부용연립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56-1267
COLOPHON
글, 사진
서울소셜스탠다드 석준기
하나에만 집중하는 자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743-8
평범한 동네에 파고든 작은 책방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1-701
밀영의 특별한 일들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265-15 2층
성수동 산책하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2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