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8-29
슬렁 아카데미 프로그램 대장정의 끝은 요나님의 <재료의 산책>입니다.어슬렁스테이와 슬렁아카데가 합쳐진 프로그램으로 청운광산의 공유주방에서 참가자분들과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자고, 조식까지 함께하는 시간이였습니다.이날 저녁은 시연을 보며 레시피를 듣고 배웠습니다.
저녁 메뉴는 연근과 표고를 구워 흰들깨, 곤드레나물, 선비잡이콩과 시오코우지를 한 숟가갈 넣은 밥, 배추와 무를 구워 끓인 국, 토란과 늙은 호박, 밤을 넣어 튀긴 크로켓, 레몬 마요네즈, 쪽차를 살짝 데쳐 곶감과 김, 큔의 영귤소금을 넣은 드레싱으로 유자 코우지로 무치고 유자소금에 절인 적양배추, 발효두부 샐러드, 묵힌 홍시에 무말랭이를 더하고, 찐 양배추와 우엉 강된장이 준비됐고, 디저트로는 흰팥으로 만든 앙금을 감싸 구운 수수부꾸미가 나와 풍성한 저녁식탁이였습니다.더 맛깔나는 맛을 위해 청운광산 1층에 자리잡은 발효카페에서 발효 조미료 몇가지를 구매하여 요리에 사용했다고 합니다.레시피 속 제가 갖고있던 큔 재료의 등장은 모르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습니다.
식사시간에는 모든 조명을 끄고 세 개의 초만 켜둔채 20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맛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며 오롯이 맛의 감각을 느끼는 시간은 각각의 음식마다 다른 특색을 갖은 정원으로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으로 보듯이 입으로도 또렷함과 다양함이 보이는 경험이였어요.
취짐 전, 각자의 방에서 보이는 광화문쪽의 야경을 보면서 동시에 여기가 서울인가 할 정도로 고요한 동네의 주변이 신기하게 맞물려 청운광산의 창문을 보는 맛을 느꼈습니다.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시각, 부엌에서는 조용히 바지런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가 소음이라기 보다는 마치 엄마집에 온듯한 안정감과 고마움이 느껴지는 소리였습니다.아침 식사는 시금치 커리에 두부치즈, 파크림과 통밀빵, 유자 코우지를 올라간 시오코우지를 넣은 구운 달걀말이, 홍시드레싱을 뿌린 귤소금에 버무린 콜라비, 크럼블과 귤잼을 올린 발효시킨 요거트, 단호박곶감 샐러드가 올라간 찐 비트로 호화로운 개인별 한상차림이였습니다.일박 이일동안 온전한 이 세상의 맛을 고이 느끼면서 입 안에서는 저 세상의 맛을 경험했습니다. 음식이 입안에 들어온 짧은 순간, 한 맛 한 맛 선명하게 어울리다가 황홀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식사 후에도 참가자분들은 둘러앉아 자연스레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보나며 이 곳을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모든 재료를 통째로 챙겨와 컴컴한 늦은 시각부터 아직 캄캄한 이른 시각까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맛뿐만 아니라 감성을 깨워주는 글귀도 섬세하게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한겨울 청운광산 공유부엌에서 멋진 맛의 공간을 지어주신 요나님과 또 한분의 요리사님, 그리고 그 산책을 동행해준 수강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청운광산의 슬렁아카데미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어봅니다.
방 안에서 해 뜨는 걸 볼 수 있어 좋았던 청운광산에서의 아침